우주와 양자세계와 관련된 교양서적들은 언제나 재밌다.

이 책은 루프양자중력이론을 설명하는데, 저자는 이이론이 끈이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한다. 끈이론의 경우 세상이 11차원으로 이뤄졌다는 가정을 해야 하는 반면, 루프양자중력이론은 그런 가정이 없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의 토대가 되는 휠러-드위트 방정식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탄생했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은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표준모형을 결합하는이론으로서 11차원같은 가정 없이 기존의 입증된이론들에서 연역적으로 탄생했다는 것이다.

루프양자중력이론의 특징 중 하나는 무한을 없애버렸다는 것이다. 일반상대성이론은 시공이 연속적이라 가정하기 때문에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잘 작동하지만, 양자수준의 미시적인 세계, 예를 들어 블랙홀 내부나 빅뱅 이전의 상태에 대해서는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다. 루프양자중력이론에 따르면 공간은 루프(고리)들이 그래프(노드와 링크)형태로 연결되어 있고, 이 뜻은 공간이 불연속적이며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의 최소 단위가 있다는 것이다. 루프양자중력이론에 따르면 일반상대성이론이 공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가정했지만 공간은 사실 불연속적이므로 미시세계를 올바르게 예측할 수 없다.

책 전체에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유물론적 태도와 통찰에 대한 존경이 서려있다. 특히 데모크리토스는 연역적인 추론으로 세상의 기본 단위는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입자로 구성되어있다고 주장했다. 기록은 없지만 만약 공간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면 그는 공간조차도 불연속적이라 대답했을 것이며, 이는 루프양자중력이론이 밝혀낸 해답과 동일한 것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 해박하면 참 멋있어보인다.

데모크리토스의 빛나는 낱말들에는 깊은 보편주의(universalismo)의 감정이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땅에 갈 수 있으니, 훌륭한 영혼에게는 온 우주(universo)가 조국이기 때문이다."

  • 43쪽

책의 끝 부분의 과학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인상깊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것, 불확실한 것을 불확실하다고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전승되어 온 지식에 의심을 품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아마 그렇게 살지 않는 많은 사람들(특히 종교)떄문에 마음이 영 답답한 것처럼 보인다. 재밌는 책이었다.

필사

... 코페르니쿠스는 이런 식으로 하면 계산이 훨씬 더 잘 맞으리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프톨레마이오스의 계산보다 더 잘 맞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이디어만큼은 올바른 것이었습니다. 다음 세대에 요하네스 케플러는 실제로 코페르니쿠스의 체계가 더 잘 기능하도록 만들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케플러는 새로운 정확한 관측들을 공들여 분석하여 몇 가지 새롭고 간단한 수학적 법칙으로 태양 주위의 행성들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고대에 얻었던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더 정확했습니다. 1600년대에 와서야 처음으로 인류는 천 년 이상 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했던 것보다 뭔가를 더 잘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 49쪽

... 따라서 루프이론의 핵심 예측은 공간이 연속적이지 않다는 것, 무한히 나눌 수 없다는 것, '공간의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정말 작습니다. 가장 작은 원자핵의 10억분의 10억분의 1보다도 작죠.

  • 167쪽

물리학에서는 연속적인 공간을 어림하기 위해 종종 촘촘한 모눈격자를 씁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어림할 연속적인 공간이 없습니다. 공간은 진짜로 알갱이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양자역학의 핵심입니다.

  • 170쪽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의 연속적인 굽은 공간과 양자역학의 평평하고 균일한 공간 속에 있는 불연속적인 양자들 사이의 분리는 이제 완전히 해소되었습니다. 더 이상 모순은 없습니다. 시공연속체와 공간의 양자 사이의 관계는 전자기파와 광자 사이의 관계와 같습니다. 전자기파는 광자를 큰 규모에서 어림하여 본 것입니다. 광자는 전자기파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고요. 연속적인 공간과 시간은 중력의 양자들의 역학을 큰 규모에서 어림하여 본 것입니다. 중력의 양자는 공간과 시간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이고요. 동일한 수학이 일관되게 양자중력장과 다른 양자장들을 기술합니다.

  • 194쪽

제가 언급한 최근의 세 가지 실험 결과들은 마치 자연의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새로운 장과 이상한 입자, 부가적 차원과 또 다른 대칭, 평행 우주, 끈 등등을 꿈꾸는 일을 그만하라. 문제의 자료는 단순하다. 일반상대성이론, 양자역학, 그리고 표준모형이다. '그저' 그것들을 올바른 방식으로 결합하기만 하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고 말입니다. 이는 루프양자중력 쪽에는 안심이 되는 지침입니다. 그 이론의 가설이라고는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 그리고 표준모형과의 양립 가능성밖에 없으니까요. 공간의 양자라든가 시간의 사라짐과 같은 급진적인 개념적 귀결들은 대담한 가설이 아니라, 두 이론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 귀결을 연역해낸 결과입니다.

  • 213쪽

그러나 이러한 발견들에는 더 깊은 귀결이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기본 상수들의 확인은 자연에서 무한히 가능해 보이는 것들에 한계를 짓습니다. 이는 무한처럼 보이는 것들은 우리가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헤아리지 못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것이 일반적으로 참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무한'은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에 붙이는 이름일 뿐입니다. 자연은, 우리가 연구해보면, 결국에는 정말로 무한한 것은 없다고 말해주는 듯합니다.

  • 229쪽

⟪모래알 계산⟫은 쾌활하면서도 깊이가 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시대를 앞지른 계몽주의로 비상하여, 애초에 인간의 정신으로 접근할 수 없는 신비가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지식의 형태에 반기를 듭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우주의 정확한 크기나 모래알의 정확한 개수를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옹호한 것은 지식의 완전함이 아닙니다. 반대로 그는 자신이 추정한 값이 근사치이며 잠정적임을 명시합니다. 예를 들어 그는 우주의 크기에 관한 여러 가지 대안들을 다루지만, 분명한 의견을 갖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완전한 지식을 가졌다는 자부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죠. 중요한 것은, 어제의 무지가 오늘 밝혀질 수 있고, 오늘의 무지가 내일 밝혀질 수 있다는 인식입니다.

중요한 것은 알려는 욕망을 포기하는 것에 대한 반항입니다. 이는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의 표명이며, 무지에 만족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무한이라 부르면서 앎을 다른 곳에 위임해버리는 사람들에 대한 당당한 회답입니다.

  • 231쪽

그런데 우리가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면, 과학이 말해주는 것에 어떻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요? 대답은 간단합니다.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확실한 대답을 주기 때문이 아닙니다. 과학을 신뢰할 수 있는 까닭은, 현재 우리가 가진 최선의 대답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찾아낸 최선의 대답 말입니다. 과학은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문제들에 관해 우리가 아는 최선의 것을 반영합니다. 과학이 배움에 열려 있고 기존의 지식에 의문을 던진다는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과학이 제시하는 답이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최선의 것임이 보장됩니다. 더 나은 답이 발견되면, 그 새로운 답이 과학이 되는 것이죠. 아인슈타인이 더 나은 답을 찾아, 뉴턴이 틀렸음을 보여주었을 때, 그는 가능한 최선의 답을 주는 과학의 능력을 의문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능력을 확인한 것이었죠.

그러므로 과학의 답은 확정적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답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답이 우리가 가진 최선의 답인 까닭은, 우리가 그 답을 확정적이라고 여기지 않고, 언제나 개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무지에 대한 의식이 과학에 특별한 신뢰성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 256쪽
50.
[2019.09.14]
49.
[2019.09.13]
혐오정치와 개신교
48.
[2019.09.12]
보이는 것은 실재가 아니다
47.
[2019.09.08]
인연 - 피천득
46.
[2019.06.09]
이건 하면서 저건 왜 안해요?
45.
[2019.05.13]
존재에 대하여 [有物]
44.
[2019.05.06]
죽편(竹篇) 1 - 여행
43.
[2019.05.05]
당신 인생의 이야기
42.
[2019.05.04]
41.
[2019.04.29]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40.
[2019.04.27]
에고센트릭 시스템
39.
[2019.04.15]
서구가 만든 중동
38.
[2019.04.14]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37.
[2019.04.12]
Our Planet
36.
[2019.04.11]
"불교에서는 생명 아닌게 없어"
35.
[2019.04.10]
볼링 100점
34.
[2019.04.09]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월
33.
[2019.03.23]
32.
[2019.03.20]
부두
31.
[2019.03.15]
30.
[2019.03.11]
지옥
29.
[2019.03.06]
28.
[2019.03.05]
기본소득 → 무상 서비스
27.
[2019.03.04]
기술 도서
26.
[2019.03.03]
25.
[2019.03.02]
손 씻기
24.
[2019.03.01]
퍼블리2
23.
[2019.02.28]
책 읽기
22.
[2019.02.27]
퍼블리
21.
[2019.02.26]
위빠사나
20.
[2019.02.25]
다육이2
19.
[2019.02.24]
18.
[2019.02.23]
비극
17.
[2019.02.22]
간담회 후
16.
[2019.02.21]
누구인가?
15.
[2019.02.20]
팀원을 평가하는 세 가지 기준
14.
[2019.02.18]
감사의 글
13.
[2019.02.16]
파워풀
12.
[2019.02.15]
11.
[2019.02.14]
단조증가
10.
[2019.02.13]
퍼스날 데이타베이스
9.
[2019.02.11]
성찰하는 남자들
8.
[2019.02.10]
삶의 의미
7.
[2019.02.08]
6.
[2019.02.07]
버림받는다는 것
5.
[2019.02.06]
전문성
4.
[2019.02.05]
다육이
3.
[2019.02.04]
React
2.
[2019.02.03]
1.
[2019.02.02]
첫 번째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