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헌 인문(人紋)의 종교 30 - 개신교 극우주의와 차별금지법

향린교회 김희현 목사님. 넘나 멋진 글이라서 발췌함.

...

한국교회가 거리두기를 한다 해서 전광훈 현상을 떨쳐낼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교회 내부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근본 문제는 정신의 퇴화라고 할 수 있다.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인간 ‘향상’(ascent)의 지표로 삼은 ‘올바름에 대한 감각’이라는 개념을 빗대어 말하자면, 한국교회는 ‘새로운 미덕을 추구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느끼는 정신적 생동감을 잃고, ‘기존의 구조를 보존하는 것’을 올바르다고 느끼는 정신의 퇴화에 시달리고 있다 하겠다. 퇴화한 종교는 ‘자신의 기준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것’보다 ‘타인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깨뜨리는 것’이 영혼의 성숙에 이롭다는 사실을 잊는다.

‘혐오를 표현할 자유’를 요구하는 퇴행적 교회는 결국 역사성을 잃은 폐쇄 종교로 전락할 것이다. 역사의 진보는 새롭게 도래하는 가치(value)를 수용하는 미덕(virtue)을 요구한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익숙하지 않기 마련이다. 이 순간,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혐오를 표현하는 것은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 ‘한계’의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혐오의 감정이란 그 존재의 ‘한계로서 허용’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 존재의 ‘자유로서 장려’될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만일 허용된 것과 장려할 것을 구별하지 않고 혐오 감정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지배당했다면, 기독교 종교의 역사는 진즉에 끝났을 것이다. 인류는 자신의 정신을 향도하지 못할 종교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종교의 역사가 어두울 때는 차별과 혐오를 경건의 동력으로 삼는다. 기독교 역시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이유로 자연을 파괴하고, 성차별과 여성에 대한 억압, 동성애 혐오와 인종차별 등을 장려하는 불량신학을 배출했다. 율법의 이름으로 폭력을 저지른 무지의 시대였다. 그러나 어두운 마음을 씻어내는 하늘의 믿음이 역사에서 솟아나고, 믿음의 사람들은 자신을 자기 시대의 율법이 아니라 신의 은총에 내맡긴다. 그것이 역사를 헤치고 살아나온 종교의 모습이다. 예수의 제자들 역시, 사마리아 지역을 혐오하는 유대적 반북주의를 극복했기 때문에 내부적 가치를 획득하고, 할례받지 않은 비유대인 자매 형제와 식탁공동체를 마련함으로써 외부적 통합을 이루어가며 역사를 써갔다. 그들이 만일 믿음을 율법의 하위개념으로 삼아 율법의 계명을 따른 차별과 증오에 그쳤다면, 그들은 적(敵)을 발명하는 일을 얼마간 하다가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서, 만일 종교의 가르침을 진실로 갈망한다면, 바랄 것은 자기 눈에서 비늘이 벗겨지는 것이지 혐오하는 적들의 죽음이 아니다. 역사를 구원하는 신의 은총을 진실로 믿는다면, 귀의해야 할 곳은 자기 편견이 아니다. 복잡한 듯하여도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의 요체는 사실 간단하다. 오직 사랑이 이기도록 자신의 율법적 판단을 중지하고 하나님의 은총에 귀의하는 거다. 예를 들어,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시대를 향해 준 프란시스코 교종의 고백과 같은 것이다. “신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총 아래로 나아가려는 사람(성소수자)을 내가 어찌 정죄할 수 있는가!”

개신교 극우주의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종교가 혐오 정치에 의존하는 습속에서 벗어나려면 회개가 동반된 긴 정신의 성숙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시민의식이 성숙해지면서 과대표 된 개신교 극우주의의 텃밭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을 수치로 알 수 있다. 올해 4월 국가인권위가 시행한 의식조사에 따르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찬성하는 사람이 88%에 달하며, 성 소수자의 동등한 대우에 대한 의견도 74%에 이른다. 2013년에 시도된 차별금지법 제정을 한국교회가 앞장서 좌초시킬 때에는 60%였다. 빠르게 자라난 사회적 의식과 견줘보면 지체된 기독교의 의식이 아쉽지만, 그것도 살아야 할 우리 현실일 뿐이다. 다만, 타인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자격이 피조물에게 있지 않다는 겸손만 갖추어도 좋겠다. 그렇다면, 교회는 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을 보여주는 시금석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교회의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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