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SCHENKENNTNIS(사람 보는 안목)

⋯⋯ 아이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가족 안에서 상속권과 다른 특권을 가지고 있는 쪽이 남자라는 것을 금방 감지한다. 사려가 깊은 부모가 평등한 권리를 옹호하고 전통적인 특권을 포기한다 하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가사를 전담하는 어머니가 아버지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이에게 납득시키는 일은 쉽지 않다. 어디에서건 남자의 우월한 모습을 목격한다면 이것이 남자 아이에게 무엇을 의미할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태어나면서부터 남자 아이는 여자 아이보다 훨씬 더 귀여움을 받으며, 왕자와 같은 대접을 받는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남자 아이를 더 선호한다. 남자 아이는 어디를 가건 자기가 집안의 후계자로서 더 많은 권리와 더 큰 사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느낀다. 사람들이 그에게 한 말이나 간혹 자기 스스로 한 말들은 남자의 역할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늘 상기시킨다.

또한 하찮은 집안인을 하는 여자들을 보면서 아이는 남성이 우월하다는 것을 더 뚜렷하게 느낀다. 주변의 여자들이 남녀의 동등함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아이에게 강력한 인상을 남긴다. 여자들은 대부분 종속적이며 하찮아 보이는 역할만을 한다. 결혼 전에 여자들은 남자에게 “당신은 우리 문화에서, 특히 가족 내에서 남성 우위의 원칙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질문을 던지지만 평생 그 대답을 듣지 못한다. 이에 대해 여자들은 계속 남녀평등을 주장하거나 아니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아예 체념해 버린다. 이와 달리 남자들은 어렸을 적부터 좀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자란다. 아이는 이 신념을 일종의 의무라고 느끼며, 삶과 사회의 도전에 대해 특권 의식을 갖고 남성적인 방식으로 대응한다.

아이는 이런 관계에서 발생하는 상황들을 모두 체험한다. 그러면서 아이는 여성의 본질에 대해 수많은 인상과 견해를 접하게 된다. 그 안에는 대개 가엾은 여성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 이런 식으로 남자 아이는 남성적으로 성장한다. 권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그가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예외 없이 거의 남자다운 성격이거나 남자다운 생각이다. 이러한 권력 관계로부터 일종의 남성적 미덕이 생기게 되는데, 이 미덕이 어디서 연유하는지는 저절로 밝혀진다. 어떤 성격은 ‘남성적인’ 것으로, 어떤 성격은 ‘여성적인’ 것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을 정당화할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소년과 소녀의 심리적 특성을 비교하여 이런 구분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았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우리는 일정한 틀에 갇혀 있고, 편향된 권력 관계에 의해 제한된 삶의 방식과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만 이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권력 관계는 아이에게 권력욕을 발달시킬 수 있는 공간을 강제적으로 제공한다.

알프레드 아들러, 라영균 옮김, <인간 이해> (1926년), 일빛, 2009, p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