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파괴와 테스트 주도 개발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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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린 브라이어의 책 『순서 파괴』는 아마존이 일하는 문화를 집대성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책 제목 '순서 파괴'의 구체적인 방식인 PR/FAQ입니다. 아마존에서는 어떤 제품을 만들기 전에 보도자료(PR, Press Release)와 FAQ(예상 질문)를 먼저 작성해서 제품이 해결하려는 문제와 달성하려는 목적을 구체화합니다. 보통의 회사에서 제품 출시 직전에 작성하는 PR/FAQ를 가장 앞으로 옮겨와 순서를 파괴했기 때문에 아마존은 오로지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직 아무 일도 하지 않아서 제품을 만들다가 생기는 편향이 없으니까요.

PR/FAQ는 '테스트 주도 개발'이라는 소프트웨어 개발 방법론과 공통점이 있습니다. 테스트 주도 개발은 작업이 끝났을 때 만족해야 할 요구사항을 미리 구체적으로 생각해서 테스트를 작성합니다. 테스트를 먼저 작성하고 테스트를 만족하는 소프트웨어를 이후에 작성합니다. 켄트 벡이 테스트 주도 개발 방법론을 퍼트리기 전까지 테스트는 소프트웨어 개발 단계의 후반부에 수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테스트 작성을 개발 단계의 앞부분으로 옮겨오면서 순서 파괴를 했습니다.

순서 파괴와 스티븐 코비, 습관 2: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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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순서 파괴』를 읽어보니 아마존은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중 두 번째 습관인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를 극단적으로 잘 지키는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 제목의 'Highly Effective People'이 번역을 거치며 '성공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굉장히 자본주의적인 책 같지만 사실은 인간 내면을 이야기하는 따뜻한 책입니다. 이 책은 20대 초반에 읽었지만 지금 다시 봐도 감동적이군요.

두 번째 습관을 소개하는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 챕터는 자신의 가상의 장례식을 상상하게 하면서 인생의 끝에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를 독자가 고민하게 만드는데, 이를 아마존의 언어로 다시 말하면 인생의 PR/FAQ를 작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두 번 창조된다'라고 얘기하면서 목수가 일하는 방식을 예로 들고, 그 예를 사업으로 확장하고, 또 인생 전체로 확장합니다. 이 예시들에서 '첫 번째 창조'가 곧 아마존의 PR/FAQ와 같습니다.

저는 인생에 딱히 명확한 계획이 없고 그냥 흘러가는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는 편입니다. 제 인생에 대한 '첫 번째 창조'에 별로 신경을 안 쓰고 있네요. 하지만 “다른 사람들, 주위 환경, 과거의 습관 등에 의해 만들어진 두 번째 창조물”로써 살아가는 인생도 충분히 좋은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을 생각하며 시작하라”는 말은 모든 것은 두 번 창조된다는 원칙에 기초한다. 이때 첫 번째 창조는 마음속에서 하는 것을 말하며 두 번째 창조는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말한다.”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다른 예로 사업의 경우를 살펴보자. 당신이 만약 성공적인 기업 경영을 원한다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를 분명히 규명해야 한다. 이는 생산하려는 제품과 제공하려는 서비스가 목표로 하고 있는 시장을 신중하게 고려한 후 결정한다. 그다음 겨냥하는 목표에 맞도록 재정, 연구개발, 생산, 마케팅, 인사, 설비 등의 요소를 준비한다. 당신이 사전에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했느냐가 그 사업의 성패를 결정짓기도 한다.

사업이 실패하는 대부분의 경우는 첫 번째 창조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예로 불충분한 자본 공급, 시장에 대한 이해 부족, 사업계획의 부재 등을 들 수 있다. 자식을 기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다. 자식을 책임감 있고 스스로 절제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고자 한다면 자녀와 늘 접촉하는 일상생활에서 이 같은 목표를 마음속에 분명히 새겨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녀들에게 독립심이나 자존감을 키워 줄 수 있도록 자녀교육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모든 사물이 두 번 창조된다는 것은 하나의 원칙이다. 그러나 모든 첫 번째 창조물이 의식적인 설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개인생활의 첫 번째 창조인 인생 목표에 대해 자각하지 못하거나 이것에 대해 책임감을 갖지 않는다면, 이는 자신의 영향력의 원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이나 주변 여건으로 하여금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의 방향을 결정하도록 내버려두는 셈이 된다. 이것은 우리가 가족, 친지, 다른 사람들의 각본에 따라 반사적으로 살아가는 것이며 주위 환경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다.”

...

“이 과정을 의식했든 못했든 그리고 통제를 했든 못했든 간에 인생의 모든 부분에는 항상 첫 번째 창조가 이미 존재한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설계한 혹은 다른 사람들, 주위 환경, 과거의 습관 등에 의해 만들어진 두 번째 창조물인 것이다.”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자극과 반응과 해석, 사실과 생각, 가설과 팩트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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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에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유명한 말이 등장합니다. 스티븐 코비는 이 말을 어떤 책에서 봤는지 정확하게 적어놓지는 않았습니다. 항간에는 그 책이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라고 잘못 알려져있지만 이 책에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라는 문장이 등장하지 않습니다(물론 주제의식은 통하고, 비슷한 말도 있긴 합니다). 어찌됐든 제가 정말정말 좋아하는 말이고, 스티븐 코비의 책이 단순한 자본주의적 성공을 이야기하는 책이 아니라는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다'는 말은 다른 말로 '사실과 생각을 분리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지면 감정은 우리 내면에서 '이것이 사실이다!' 라고 강력하게 주장합니다. 하지만 제 감정이 사실이라고 외치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생각, 즉 어떤 사실을 그 순간의 감정에 따라 해석한 생각인 경우가 태반이었습니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 공간'이 있고, 저는 이 공간을 '해석'이라고 부릅니다. 어떤 자극에 대해 바로 반응하지 않고 다양한 해석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성숙한 사람을 구별하는 하나의 척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천하기 너무 어려워요)합니다. 이 내용을 디어코퍼레이션의 언어로 다시 쓰면 '가설과 팩트를 구분하자, 많은 경우 가설의 향연이다.'가 됩니다. (감정, 자극, 해석, 반응에 대해서는 뇌과학자가 직접 뇌졸중을 겪고 회복해서 쓴 책인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https://myeongjae.kim/blog/2020/07/09/i-am-void-and-i-am-every-where#질-볼트-테일러-⟨나는-내가-죽었다고-생각했습니다⟩)

진실과 사실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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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사실은 진실이 아닙니다.

그러면 진실은 무엇이냐? 저도 잘 모르지만... 법에서 사용하는 '실체적 진실'이라는 단어를 최근에 알게 되었는데, 이 단어로 검색해보니 형사소송법과 관련해서 '사실'과 '진실'에 대한 많은 논문들이 있었습니다. 「형사절차상 진실․사실․ 실체적 진실의 관계와 그 발견」 이 논문의 요약은 사실과 진실의 관계를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진실과 사실 : 진실과 사실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사실과 진실은 각 단어들 사이의 일반적으로 혼동을 불러일으키는 사전적으로 매우 유사한 정의를 함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실과 진실은 그 각각의 성질에 관하여 이야기 할 때에 언급되어야만 할 매우 특별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형사절차의 출발은 범죄의 발생이다. 이때 범죄발생의 원인과 결과가 진실의 주요내용이 된다. 예컨대 갑이 을을 세 번 때려서 을이 사망한 경우에 갑이 을을 세 번 때린 것이 원인이 되어 을이 사망한 것이 진실이다. 그러나 이러한 진실은 을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그 진실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대부분의 범죄에 있어서 범죄발생의 원인과 결과의 대략적 모습이 사후적으로 그려질 뿐 범죄당시의 그 모습이 그대로 현출될 수는 없다. 특히 목격진술이나 CCTV와 같은 정황증거가 없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결국 과거에 발생한 사건의 진실을 확인하는 것은 인간적인 한계와 증거의 멸실 등으로 인하여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형사절차상 사실은 범죄발생 후에 ① 수사기관이 인정한 사실과 ② 수사기관이 공소제기를 통하여 형성한 공소사실 ③ 그리고 판사가 증거재판주의와 자유심증주의에 기초하여 형성한 범죄사실로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범죄사실에 규범적인 형법을 적용하여 최종적으로 범죄와 범죄인을 확정하게 된다. 즉 이러한 광의의 사실인정의 절차를 통해 법정에서 형성된 것이 (범죄)사실이다. 결국 형사절차를 통해서 형성된 스토리가 사실이라고 할 수 있다.

- 권오걸. 형사절차상 진실․사실․ 실체적 진실의 관계와 그 발견, 경북대학교, 2013.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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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모든 자기계발서의 뿌리처럼 느껴집니다. 개인의 성장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읽다보면 스티븐 코비의 책이 많이 떠오르는데, 순서 파괴를 읽으면서도 역시 이 책이 떠올랐습니다.

다만 스티븐 코비는 개인의 노력과 책임을 너무 강조하는 면이 있어서 그 부분은 썩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회사에서 팀원들과 같이 읽은 책 『두려움 없는 조직』에서도 심리적 안전감은 개인 뿐만 아니라 조직차원에서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고 했고.. 저도 모든 것을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깨달음'과 관련된 글(참나를 찾는 자아실현으로서 깨달음 | 불교문화)을 읽다가 '깨달음은 개인적 노력에 기초를 두고 있지만 집단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거의 모두 조직에 소속되어 있으므로 깨달음은 조직 단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라는 문장을 봤는데 제가 스티븐 코비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아쉬움을 정확하게 해소해주는 말이었습니다.

스티븐 코비도 이런 비판을 알았는지 그의 인생 마지막 인터뷰에서 아래처럼 이야기했습니다.

“위대한 회사를 만들려면 위대한 개인들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위대한 회사가 되려면 회사는 7가지 습관을 조직의 차원에서 실천해야 한다. 주도성을 발휘하고, 분명한 사명과 전략을 확립하고, 일관되게 최우선 목표를 실행하고, 이해 당사자 모두의 승-승을 생각하고, 시너지를 내서 미래를 위해 혁신을 해야 한다. 7가지 습관에 충실한 사고는 조직의 성공에 필수적이다. 7가지 습관 문화를 정착하는 것은 CEO만의 일이 아니라 모두의 일이다. 그런 문화에서는 모두가 리더이다.

결국 나는 원칙 중심의 리더십을 조직의 문화로 정착시키는 데에 열정을 쏟았다. 그러한 리더십은 모두를 위한 것이지 CEO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형식적 권위가 아닌 도덕적 권위에 기반을 두고 있다. 간디는 공식적 직위를 가진 적이 없다. 아웅 산 수치 여사와 넬슨 만델라는 양심을 지킨 대가로 옥고를 치렀고 이를 통해 도덕적 권위를 얻었다.

나는 평생을 가르치면서 살았다. 높은 직위에 오른 적이 없지만 나의 사명 완수에 대해서는 깊은 책임감을 느꼈다. 7가지 습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든 리더가 될 것이다.”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그럼에도 불구하고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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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약간 삼천포로 빠졌지만, 어쨌든 무언가의 끝을 미리 생각하고 시작하는 방식은 경영은 물론 소프트웨어 개발을 할 때도 효과적입니다. 모든 일에 적용할 수 있는 근본 원칙이 있을까요? 스티븐 코비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 『순서 파괴』를 읽으면서 그의 주장을 조금 더 이해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7가지 습관과 같은 그런 훌륭한 생각들을 해낼 수 있었습니까?”

“그건 내가 내놓은 생각이 아닙니다.” 그는 대답했습니다.

“무슨 뜻인가요?” 내가 물었습니다. “박사님이 쓴 책 아닙니까?”

“그렇죠, 내가 썼죠. 하지만 그 원칙들은 내가 책을 내기 훨씬 전에 이미 알려져 있던 것들입니다. 자연법칙이라고나 할까요? 나는 그저 사람들을 위해 그 원칙들을 모아서 정리해주었을 뿐입니다.”

- 스티븐 코비,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